'주5일근무제'를 둘러싼 쟁점에 관하여
대통령의 권고에 따라 2000년에 합의한 이후 답보 상태에 있었던 '주5일근무' 시행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노동계의 입장에 대해 재계도 '임금은 보전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이는 마치
노동시간은 단축되는데 임금이 그대로 보전된다면 큰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며 기를
쓰며 반대했던 재계의 주장이 근거 없음을 반증한다. 그나마 '임금보전'도 법률에
명문화하는 것은 극구 안 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주5일근무,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 연월차 휴가·생리휴가 문제다. 재계에서는 월차를 폐지하고 연월차 합쳐서
15일로 통일하자고,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처리하자고 한다. 현행 월차는 한달
개근했을 경우 1일이고, 연차는 1년을 개근했을 때 10일이다.
OECD 국가 중 2위를 자랑하는 노동시간을 가진 한국. 국제노동기구(ILO) 조사
결과, 1999년 한국의 제조업 노동시간은 비교대상 75개국 중 7번째로 긴
50시간이다. 75개국 평균인 41.7시간보다 주당 평균 8.3시간이 길다. 8.3시간이면
꼬박 하루를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엔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연차휴가가 없고 월차가 유일한
휴가이다. 일요일도 공휴일도 무시된 채 한 달에 이틀 쉬는 정도가 고작인데
월차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사실상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절반인 53%가 비정규직인데 이들을 제외한
노동시간단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생리휴가까지 무급으로 하면 전체
직장 여성의 70%가 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월차와 생리휴가 모두를 잃는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활 조건 향상을 도모하지 못하는
연월차 축소, 생리휴가 무급 조치는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여기에 연월차 휴가 부여요건 역시 현행인 1년 개근·한달 개근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둘째, 연장근로 문제다. 연장 근로수당 할증률을 현행 50%에서 25%로 줄이자는
재계의 입장은 노동현장 실태를 왜곡하는 주장이다. 재계는 노동자들이
연장근로(초과근로)를 선호하기 때문에 초과근로를 줄이기 위해서 할증률을 25%로
줄이려 한다는 것인데 터무니없는 소리다. 초과노동의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있다.
사용자들이 생산물량이나 업무량에 따라 초과근로를 조절하고 있지 노동자들이
조절할 권한은 없다. 설사 노동자들이 초과근로를 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기본급 수준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외피만 자발성을
띠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하는 게 초과근로다.
사용자들이 초과근로 시행 요건을 제한하는 방안이 더 강구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셋째, 시행시기다. 재계는 공무원·교육부문부터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하잔다. 계산상으로는 주 43시간, 42시간, 41시간 등으로 단계를 두어
단축하는 것이 가능할 지 모르나 근로형태와 현장과 괴리된 비현실적 발상이다.
한시간씩 차등적으로 줄인다는 말은, 토요일 근무를 4시간, 3시간, 2시간으로
하자는 말인데, 2시간, 1시간 일하려고 출근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며, 재계가
바라는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업종에도 차등을 두어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는 것도 노동시간 단축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얼마 전 개악된 여성노동자 관련 근로기준법(모성보호 관련법이라
불리는)도 정작 실시된다고 해도 전체 여성의 1/5정도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자영업, 전업주부, 공무원 등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주5일근무 역시 적용범위에
대해 포괄력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를 최대한 방어하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주5일근무 시행으로 생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주5일근무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을 반긴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다방면에서 이루어질 삶의 질 향상이라는 본래 취지를 해치는 모든 시도에
적극 대응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 제도를 환영하고 자민련, 한나라당은 신중론을
펴고있다고는 하지만 양측 모두 이 제도의 본 취지에 닿아있지는 않다.
주5일근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노동전략을 확고히 다짐으로써 경쟁력 강화,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 하는 것이 정치권의 의도이다.
우리는 이런 접근에서 비롯된 주5일근무제는 결국 다시 국민 생활의 불안과
기초생활 파괴로 이어지리라 우려한다. 쟁점이 되고 있는 사항들이 진정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가져오고 개개 국민의 삶에 풍요로움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더불어 주5일근무제가 가져올 생활상의 변화를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련 사회제도의 보완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2001년 7월 26일
청년진보당 부대변인 이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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