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달랐다
판사노조 사무실로 가던 길이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매고 있던 노란색 몸벽보를
쳐다보던 파리 시민 2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TV와 르몽드에서 봤습니다. 정말 당신들은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단 3명의
노동자가 세계 많은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고 다녔던 김우중 회장을 잡겠다고 이곳
멀리 파리까지 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 친구들은 더군다나 한국정부가 김우중은 잡지 않고 경찰을 동원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면서 우리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힘을
내라며 굳은 악수를 청했다.
뿐만 아니었다. 파리 주요 도심에서 선전전을 하기 위해 전철을 타고 갈 때면 우리
주변에 있는 시민들은 어김없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한국의 지금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어했다. 또 우리를 동행취재하던 방송국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그들은 서슴없이 말했다.
"한국에서 온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세계 노동자가 연대해 노동자의 희생을
막아내야 합니다"
파리 시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를 탄압한다는 것에 그들은
크게 분노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노동자가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최대의
희생자인데 어떻게 정부가 물리적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 김우중씨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사회운동가, 노조지도자, 시민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액수를 설명하면 몇 번에 걸쳐 되물었다. 한국의 재벌들이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인들에게 뇌물로 바쳤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리 시민들은 달랐다.
노동자에 대한 애정과 연대의식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선전물을
나눠줄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와 굳은 애정을 표시했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고 투쟁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며 연대의 인사를 전했다.
파리 시민들은 우리가 달고 다니는 뺏지를 기꺼이 사주었고 우리가 함께 사진을
찍기를 원했고 행운이 있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의 사회운동가들도 역시 달랐다.
오래 전에 연락해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지원과
연대의 활동을 펴기다 대단히 어려운 곳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그들의 애정은
너무나 감동스러웠다.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바쁜 업무를 하면서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활동가들을 만나도록 밤낮으로 애를 써
주었었다.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제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모든 일들을 아낌없이 해 주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경찰에 의해 탄압을 당하는 일을 결코
구경만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멕시코의 자파트스타 행진을 보호하기 위해
100명의 활동가를 파견했다. 기꺼이 자신들이 쓰는 사무실과 숙소를 내주었으며
우리의 활동을 돕기 위해 직접 뺏지 판매와 모금활동을 해줬다. 정치적 성향은
달랐지만 그들의 모습은 하나였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하나고 함께 싸워야 하며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만날 때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외쳤다.
연대!!!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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