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분노의 바다
MBC 스페셜 [1750명의 해고통지서]
지난 3월 2일(금) 밤 11시 5분. MBC스페셜에서는 대우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문제를 다룬 '1750명의 해고통지서'가 방영되었다. 그 방송을 본 대다수
시청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야말로 눈물의 바다였다. 인터넷 MBC스페셜
홈페이지는 순식간에 수백 건의 글이 올라왔으며 그순간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김대중정권의 노동자 목자르기식 구조조정에 대한 비난의 글이 쇄도하였다. 특히
그날 방송에 나레이터를 한 손석희 아나운서는 3월 6일 문화일보 23면에 다음과
같이 그 방송에 대한 느낌을 나타내었다.
'MBC스페셜의 반란'
이번에도 ‘공영방송 타령’을 하면 지겹다고 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늘까지만
참아주시길 바란다.
오늘날 한국의 방송은, 공영이든 민영이든, 상업자본과 한 배를 타고 있다. 방송은
대형 광고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보다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려 하고, 광고주들은
역시 보다 많은 매출을 위해 방송이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것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상업적 방송이란 것은 상업자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즉 자본의
팽창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시청자들은 그 정치적,
경제적, 또는 연령적 다양성 등이 무시된 상태에서 다만 상품의 소비자로
단순화되어 텔레비전 앞으로 동원돼야 할 대상으로만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순화 작업에 오락 프로그램만큼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없다.
넘치는 오락과 드라마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반란’은 있다. 지난주 금요일 ‘MBC 스페셜’은 대우
자동차의 1750명 해고 사태를 다루었다. 부도 결정에서 대량해고 강행까지 넉 달
동안 대우 자동차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이 인고의 시대에 우리가
짐짓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그 아픈 기록들을 이 프로그램은 참으로 눈치도
없이 들이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해고 통지서를 받아들고 하늘을 향해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가장과, 32년만의 폭설 속에서 막막한 미래를 향해 주먹질을 해야 하는 일군의
노동자들과, 그런 당신들이 자랑스럽다고 울부짖는 그 아내들과, 그 팔에 안겨 제
어머니의 목도리에 쌓이는 눈을 만지작거리는 어린아이의 공허한 눈망울을 만나야
했다.
신자유주의를 좇는 구조조정이 왜 공정할 수 없는가에 대해 이 프로그램은
논리적인 분석을 가하지 않았다. 다만 그 구조조정의 그늘을 담담하게 비춘
것만으로도 할 말은 다 한 게 아닐까. 나는 방송에서 내레이터의 역할을 거의
해보지 않았지만 담당 프로듀서의 강권으로 모처럼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늘 내게 도착한 e메일에서 대우의 어느 해고 노동자는 이 프로그램이
‘천군만마’의 도움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받을 인사는 아니다. 넘치는
오락과 드라마 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MBC스페셜’ 제작진이 받아야 할
인사이다. 또한 이러한 반란은 자본의 시대에 공영방송이 짊어진 책무일지도
모른다.
〈방송인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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