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계약직노조, 목동 전화국 점거농성 투쟁의 의미
김혜진(조직국장)
3월 29일 새벽 3시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 동지들 200여명이 목동전화국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비록 다섯 시간 후인 8시부터 진압이 시작되어 농성은
해산되고 모두 연행되었지만 그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
첫째, 이 투쟁은 우리에게 비정규직 투쟁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생산을 멈추지 못했다. 투쟁을 시작하는 순간 대부분
짤리거나 공장 밖으로 내몰린다. 그러다보니 생산시설을 장악하지 못한 채 장기
농성에 돌입하게 되고, 연대투쟁이나 집회 중심으로만 파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산을 멈출 수
없을 때, 집회와 교섭으로 자신의 투쟁을 제한하지 않고 생산시설 점거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더 이상 밖으로 내몰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비록
자신들에게도 타격이 있겠지만 자본에게도 실질적 타격을 입히며 투쟁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점거라는 전술로 표현된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전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통 계약직 동지들이 보여준
일사불란함이다.
점거전술에 관한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사측이나 경찰은
한통계약직 동지들을 내내 감시해왔다. 그런데 200여명이나 되는 동지들이
감시망을 따돌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집결지에 도착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통계약직 동지들은 수많은 훈련을 했고, 결의를 다졌다. 이번 전술로 이 싸움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었다. 조합원들의 단결을 더욱 높이고,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통계약직
동지들은 투
쟁 속에서 단련되었고, 서로에게 고무되었다.
세 번째로 단지 점거투쟁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연행 이후에 보여준 태도 역시
정말로 훌륭한 것이었다.
한통계약직 노조는 묵비를 조합의 지침으로 정했다. 매우 힘든 상황이었고, 경찰의
협박도 계속되었지만 한통계약직 동지들은 서로를 신뢰하면서 묵비 원칙을 지켰다.
경찰들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러한 묵비투쟁으로 한통계약직 동지들은
동지에 대한 신뢰와 이후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확고히할 수 있었다.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목동전화국 점거투쟁이 투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고 있다. 이 투쟁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통신산업 전체를 독점자본과
초국적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려는 자본가 정권에 대한 투쟁이다. 또한 이 투쟁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요구를 대변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승리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승리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힘든 투쟁이지만 전화국 점거농성이라는 극한
투쟁을 선택했고, 이후에도 지치지 않고 내부를 추스려서 새롭게 대오를 정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의 결의만큼 이 투쟁에 연대하고자 하는 동지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목동 전화국 점거농성을
벌일 때 '비정규직 철폐와 한국통신계약직 노조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동지들이 다른 전화국에서 이 투쟁을 엄호했다. 그리고 모두가 연행된 오전
10시에는 CBS방송국에서 민중연대(준), 민주노총, 한통계약직 공투위 동지들이
앞으로 힘차게 연대투쟁할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하지만 아직 실질적이고 힘있는 연대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투쟁을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을 박살내는 전체 투쟁의 한 과정으로 배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힘겹고 외롭게 싸우고 있다. 이 투쟁을
'그들만'의 투쟁으로 내버려두지 말자. 함께 연대하고 투쟁해서 이제는 승리하는
전형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박살!의 구호가 이제는
구호로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승리로 쟁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동지들의
연대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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