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의 불꽃 3
그는 대체 누구 편인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노사연) 월간 '노동사회' 3월 호에는 한노사연 연구위원인
김영두의"대우차 사태, 평가와 노조운동의 과제"라는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그
글에서 김영두는 대우차 투쟁을 "패배한 싸움으로 규정"하면서 "대우차 노조
운동을 이끌어 왔던 여러 주체들이 합심하여 비상체제를 구축, 교섭테이블을
복원하여 정리해고 된 조합원들의 리콜제 도입, 희망센터의 내실화, 노조 참여,
해고보상금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좀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전직위원장, 제 현장조직 의장들을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연일까?
대우차 해고자인 이성재 동지는 같은 월간 '노동사회' 4월 호에 "대우차 투쟁
반성과 전망"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이성재 동지의 반성은 무엇이고 전망은
무엇일까? 투쟁기간 내내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일까?
이후 투쟁의 전망은 어떻게 밝힐까? 온갖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이성재 동지는 집행부가 일찌감치 인력감축 동의서를
써주고 정리해고를 인정했다면 부도를 면할 수 있었고, 정리해고 되는 조합원들을
줄일 수 있었다면서 반성을 촉구했다. 그가 보이는 전망은 현장 내에 '거국내각'인
'비상대책위'를 꾸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동사회 3월 호에서 김영두가 주장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했다.
왜 이성재 동지는 하필이면 노동사회라는 매체를 선택하였을까? 참고로 한노사연은
지난 시기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종용하고, 정리해고 철폐가 아닌 정리해고 최소화,
정리해고 요건 강화니 하면서 정리해고를 인정하자고 주장했던 연구소이다. 물론
노동사회에 기고했다는 것만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서라면 극우신문인 조선일보에도 기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재
동지가 주장하는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단호한 비판을 수행할 것이다.
이제, 그의 주장들을 하나 하나 비판해 보겠다. 솔직히 말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의 권고대로 "분노를 터뜨리되 가슴에 새기고, 싸움에는 뱀 같은
지혜와 버들가지 같은 유연함"을 가지고 대응할 것이다.
부도와 정리해고가 노조 탓인가?
그는 서두에서 "부도와 정리해고는 막아내지 못했지만 부평공장만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썼다"고 고백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리해고는 노조 내 주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파업에 적극 동참하지 않아서
막아내지 못한 게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부도를 막아내지 못했다니 무슨 엉뚱한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노조가 잘못해서 부도가 나고 노조가
노력했다면 부도를 막을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의 주장은 동의서 국면에서 부도=노동자 책임이라는 자본과 자본가 언론
매체들의 뻔뻔한 공세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먼저 누구나 항변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겠다. 부도 사업장은 죄다 노조가 동의서를 써 주지 않아서 부도가
나는가? 그렇다면 노조가 인력구조조정 동의서를 써 주면 부도가 날 기업이 부도가
나지 않는가?
자본주의 경제법칙에 대해서 이다지 무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노조
책임으로 돌리기 위해서인가? 이성재 동지는 과거에 자본론을 읽어 봤을 것
아닌가? 물론 외형적으로는 채권단이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유동성 위기에
빠져서 기업의 부도가 난다. 하지만 이것이 부도의 원인이 아닌 시점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주로 신용을 가지고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 생산하고
판매한다. 그런데 상품이 제때에, 제대로 판매되지 않으면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한다. 그러면 돈을 빌려 준 채권단은 기업이 더 이상 회생하지 못할 것
같으면 부도를 낸다.
대우차의 부도는 대우차가 세계 자동차 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진 까닭에 났다. 잘
아시다시피 자동차 시장은 한계가 있는데 과잉생산으로 자동차는 끊임없이
생산됐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무정부적인 생산의 결과임을 잘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해외 현지 생산을 강화하고
인수합병과 합작을 시도하는가? 또 내부적으로는 더욱더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는
것 아닌가?
이 자동차 업체간의 경쟁에서 탈락한 기업들은 몰락하고 거대 자동차 회사의
독점이 강화되면서 세계 자동차 업체는 거대 초국적 자본만이 살아남고 있지
않는가? 대우차도 그 점에서 초국적 자본이 되어 국경을 넘어 세계경영을 했던 것
아닌가? 르노의 닛산과 삼성 인수, 다임러 포드와 크라이슬러의 합작으로 인한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탄생, 현대의 기아 인수,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기아차
광주공장과의 합작, GM의 대우차 인수 계획(?) 등 거대 자동차 업체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이렇게 인수 합병, 지분 합작 등 합종연횡을 강화하고 있다.
대우차의 부도는 세계 경제의 가속화되는 위기와 맞물려 이 거대 자본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결과가 아닌가?
꼭 누구나 다 아는 이런 얘길 해야 하나? "이제는 솔직해지자"
이성재 동지도 노조가 동의서를 써주지 않아서 부도가 났다고는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작년 11월 부도는 피할 수 있는 여지는 많았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부도를 피할 수 있는 여지는 무엇인가?
그는 작년 8월 현대건설의 워크아웃 내지는 법정관리 가능성이 제기되다가 10월
30일 1차 부도가 나는 시점에서 그 불똥이 대우차 문제로 튀면서 정부에서 부도를
냈다고 하고 있다.
이 지점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인용해보자.
"급작스럽게 신문과 방송에서 대우자동차 문제가 현대건설 문제를 제치고 전면에
부각되었다. 이는 단지 국내 문제로 그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실시간
보도되었고, 그 결과 대우차 문제는 한국 정부가 '전투적인' 노동조합을 꺾고 과연
구조조정을 할 의지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시금석이 되고 말았다"
그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대우차 처리 문제가 원칙대로 정부가 구조조정을 할지
말지의 시금석인데 대우차 노조가 동의서를 수용하지 않으니까 노조를 굴복시켜
구조조정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도를 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투적 노동운동을 없애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니까 부도
압박으로 노조를 굴복시켜 구조조정의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노조 집행부가 '지그재그'를 하며 원칙을 고수하면서 동의서를 쓰지
않다가 나중에는 동의서를 써주었는데 그럴거면 진작 동의서를 써주었더라면
부도를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을 한다. 노조가 끝까지 인력구조조정이 담긴
동의서를 막아서지 못하고 '지그재그'한 것은 부도=노조 책임론이라는 엄청난
공세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굴복한 결과이다.
이때 진정 책임 있는 노동운동을 하는 세력이라면 자본과 정권, 자본가 언론의
말도 안되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서 왜 대우차 부도에 노조가 책임이 없는 지
혼신을 다해 맞대응을 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조합원
내에 알려 내고 투쟁의 동참을 호소했어야 한다. 그런데 전직 위원장들과 현장
제조직들은 오히려 지금 이성재 동지의 주장처럼 노조가 동의서를 쓰지 않아서
부도가 났다고 되려 노조를 압박해 들어갔다. 그러니 노조가 버틸 재간이 있는가?
노조가 '지그재그' 안하고 동의서 압박을 떨쳐버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왜,
무엇을 위해서 적들의 농간에 놀아나면서 자본과 정권의 목소리를 흉내내는가?
이성재 동지는 결국 글의 어디에서도 부도를 피할 수 있는 여지를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제시하지 못했다.
워크 아웃이나 부도 사업장에서 채권단이나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을 가지고
협박하면서 노조의 무쟁의나 인원감축이 담긴 노조의 동의서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쌍용차 노조가 그 압박에 지레 굴복해 무쟁의가 담긴 동의서에 서명을 했고,
금융권 합병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노조의 동의서를 요구했다. 그것은 노조의
저항을 무력화해서 구조조정을 거침없이 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고 그래서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노조 집행부는 동의서
협박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동의서를 쓰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이성재 동지는 노사협조주의자인가?
자! 이제 점점 더 그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부도가 난 기아자동차 사례를 들면서 "노조가 중심이 되어 운영자금으로
1인당 1천만원 씩을 내놓고 임금도 삭감·반납하는 노력을 보여 주었다"면서 '뱀
같은 지혜'로 조언을 한다. 하지만 아는가? 정확히 97년 7월 15일에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났을 때 회사는 인원 및 급여감축이 담긴 동의서를 요구했다. 정신나간
이재승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희생으로 회사 살리기에 앞장섰다. 조합원들은 소박한
마음으로 적금을 해약해가면서 1,800억 원을 헌납하였다. 회사는 97년 임금인상분,
휴가비, 연월차, 단협 후퇴안을 요구했고, 노조는 무쟁의 선언에다가 넘겨 줄 건
다 넘겨주었다. 현장은 택업이 됐고 배치전환이 판을 치면서 생지옥이 됐다.
이것이 그 당시 악명 높은 기아 이재승 집행부의 '회사 살리기'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 살리기 광풍에도 불구하고 기아그룹 전체에서 8,000여명의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한 늙은 노동자는 이렇게
절규했다.
"봉고신화를 만들면 장미빛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경영진의 말을 믿고, 80년
임금 반납하고 장갑도 빨아 쓰는 처절한 고통을 감수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해왔는데 이제 와서 쫓겨나듯 떠나야 하니 배신감마저 든다."
그는 정리해고와 관련하여 동의서와 마찬가지로 "단 한명의 정리해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만을 고수했기 때문에 "1천 7백 여명이 넘는 조합원이 정리해고 되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는 왜 정리해고를
막지 못했는지 합리적인 근거를 대지 못한다. 단지 빨리 항복해서 회사에 양보안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조합원의 희생이 컸다고 주장한다.
그는 작년 11월 27일 인력구조조정 합의서 이후 12월 16일 회사에서 제출한
5,794명 인원정리와 상여금 400% 삭감 계획이 이후 12월 29일 1차
경영혁신위원회에서 6,884명의 인원감축으로 늘어나서 강제 시행한 결과를 두고
일찍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 편에서는
의원퇴직 전선을 힘있게 형성하지 못한 결과로 조합원들이 나가고 그래서 현장이
위축됐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뒤의 주장은 좀더 빨리 양보했어야 하는 주장과
맞지 않는 거 아닌가? 왜 이렇게 횡설수설하나? 주장의 핵심이 뭔가? 만약
의원퇴직 전선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주장하려면 처음부터 노조가
너무 원칙을 사수해서 문제라고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
6,884명의 인원정리는 노조의 태도와 상관없이 회사에서 아더 앤더슨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밀어부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이 노조의 저항으로 인해 회사는
순조롭게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현장 내 제조직과 전직위원장들이 투쟁의
발목을 잡지 않고 적극적으로 파업에 동참했더라면 정리해고 반대 전선은 좀더
힘있게 펼쳐졌을 것이다.
이성재 동지는 지금 자본의 위기가 얼마나 깊은 지, 이 자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김대중 정권이 얼마나 눈에 핏발이 서 있는 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미리 항복을 했다면 오직 좀더 쉽게 정리해고를 단행했을 거라는 사실을
빼고는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비대위를 운운하는 동지는 반성했는가?
이성재 동지는 "현장 '공동화'를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활동가들의 일치단결과
현장 내 '거국적'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현장 내에서 2차, 3차 구조조정이 닥쳐 있는
조합원들을 강고한 투쟁대오로 묶어 세우기 위한 비대위는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비대위는 부평공장 폐쇄 운운하는 시점에서 조합원들의 추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투쟁을 조직하는 투쟁 지도부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의 들러리나 서면서 조합원들을 다 팔아먹을 수 있다.
이성재 동지도 물론 무조건 '거국적' 지도부를 구성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그간의 활동에서 드러난 자기 오류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도 과거의 자기 모습에 대한 반성이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비판한 것처럼 딴소리를 한다.
심지어는 노조와 사무노위, 사용자 3자가 하나 되어 회사 살리기 운동 즉
노사협조주의를 노골적으로 선동한다. 그는 국공합작을 예로 들며 GM, 정권,
채권단에 맞서 회사와 연대를 해야 한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회사와 정권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는가? 회사는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여서 매각하려고 6,800여명의 노동자를 잘라내고 공권력을 요청하지 않았던가?
회사의 주구인 사무노위는 진정으로 사무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새로운 주체들로 바뀌지 않는 한 연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타도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는 "현 사태를 초래한 자본과 정권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고 왜 같은 편인
노동조합만 공격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이 글이 우리가 상대방의 잘못은 너무
잘 꼬집는 데 반해, 우리 잘못은 그냥 덮어두는 현재의 운동풍토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내 느낀 바는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지만 그의 이데올로기는 자본과 정권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동조합만 공격"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성재 동지가 노동사회에 기고한 글을 중심으로 비판해 보았다.
다음에는 대우차 투쟁을 둘러싸고 대 노동자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하고 있는 여러
세력과 개인(사무노위, 김기원 교수 등)의 주장을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지만 불철저하고 노사협조주의에 물들어 있는 조돈문 교수, 노조
일각의 주장들을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가 견지해야할 이데올로기적 무기는
무엇인지 다룰 것이다.
이성재 동지의 글에 대한 좀더 근본적이고 치밀한 반박은 이 속에서 다뤄 질
것이다. 만약 그가 그 사이에 재차 논리적 대응을 해 온다면 즉각적으로 반박할
것이다.
추신 : 이성재 동지! 초발심으로 돌아가시오. 노동자 계급과 함께 하겠다는 진실
하나로 현장에 들어 왔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 원직복직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는 조합원 동지들의 진정한 벗이 되시오. 동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충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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