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울산의 '평등세상을 여는 여성모임' 홈페이지에서
해오리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글을 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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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중한 나눔터에 상큼하게 데뷔하려고 했는데...
시대가 나를 내버려두지 않네...
대우자동차에 공권력 투입됐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제 기억도 가물 가물한 98년 현대자동차 천막농성장에서 만났던 언니다.
현대자동차 천막농성장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나를 포함한)누구들 처럼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도 아니고
그저 어린 자식들, 남편을 위해 알뜰 살뜰 살아오다
청천벽력같은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고
'살아야겠다'는 오직 그 마음 하나로 농성장에 달려온 사람이었다.
물론 그 언니는 직설적이고 다혈질이었고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그래서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매우 부담을 주었던)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래서(?) 나중에 그 언니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언니 몰래 웃었던 일도 많았다.
98년 당시 자신도 굴뚝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수차례 졸라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당시 가족대책위 회장이었던 조이영자를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그런 사람이다.
그 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솔직히 반가운 마음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언니는
'당장 대우자동차로 가고 싶은데 ...민주노총에 전화를
해보았더니...계획이 없다고 한다...어떻게 해야되냐"
라고 내게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언니가 대우자동차에 가겠다고 생각한 것도 너무 놀라웠고
또 그 언니의 성격상 가겠다는 말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말을 떠듬거렸다...
'언니, 가는 것도 좋겠지만 편지를 쓰는게 어떻겠어요..편지를 써주시면 제가
인터넷으로 올려드리고 그것이 대우자동차 가족들에게 전해지면 격려가
될텐데.....'
'그래......나는 가고 싶은데.......'
그러다가 나에게 또 다른 전화가 와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30분 정도가 지나서 그 언니가 또 전화를 했다.
'민주노총에 알아보니까...내일..차 3대가 출발한다더라...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해가야될 것은 어떤 것들일까?....머리띠는 3년전에 사용하던 것 그대로
있는데....'
황당함도 잠시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언니 아저씨하고는 의논했어요?'
'응...아저씨가 혼자 가면 안되지만 민주노총에서 같이 간다니까 가라고
하더라...'
'얘들은 어떻하고..'
'얘들은 내일부터 봄방학이잖아...아빠가 봐주기로 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꼭 가야겠다면 옷이나 따뜻하게 입고 가세요...그리고 연락하세요.....'
언니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하루를 대우자동차 소식이 전해지는 인터넷을
헤매다녔다.
그러다 그 언니가 2월 20일 부평역 집회에서 얼떨결에 연대사를 하게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말빨 있는 것도 아니고 세련되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았을테지만
가슴으로 전하는 이야기였기에 집회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브레이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 언니가 마치 나에게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이야기 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남은 자의 초라한 슬픔을 이처럼 구구하게 뇌까리고 있는 걸까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부실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책임이 없어도
회사가 어려워지면 노동자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논리",
"대우자동차 노조의 주장대로 완전고용이 이뤄지려면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한겨레 신문 2월 20일자 3면)
이제 정부와 언론은 누구인지도 모를 '국민'을 핑계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잘못과 상관없이 자본이 살아남으려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까놓고 서슴치 않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자가, 그들의 식솔이 아니라는데,
'살아남았다'는데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본주의의 각박한 삶속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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